유년 시절의 저는 산만한 성격에 융통성이 없고, 고집이 좀 센 내향적인 아이였습니다.
‘울보’라고 불릴 만큼 눈물도 많았죠. 중학교에 다닐 때는 반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이어졌습니다. 너무나도 힘들었기에 자율학습시간까지 함께 한다면 버티지 못하고, 도망쳐 버릴 것만 같아 부모님께 어릴 적부터 하고 싶었던 미술을 하게 해달라고 철없이 떼를 썼습니다. 그렇게 예체능 학생이 되었고, 하고 싶었던 미술을 하게 된 만큼 열심히 했지만, 3학년이 되고,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과도한 스트레스로 많이 힘들고 지쳤습니다. 아쉽게도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게 되자, 충격과 아쉬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컸고, 내 안의 어딘가 터져버린 것처럼 화를 내고, 좌절하고, 부정적인 감정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드는 등 감정 변화가 심했습니다.
또, 세상이 나를 두고 뒷담화하는 것 같은 피해망상이 생겨 다른 사람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을 어머니께서 이상히 여기셨고, 그때 처음으로 어머니를 따라 병원을 가게 되었습니다. 조현병을 진단받았지만, 아들이 충격받지는 않을까 우려되었던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강박증이라고 이야기해 주셨으며, 진단받은 후 2년간은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가 올 때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증상 때문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한때는 증상이 좋아진 줄 알고, 약을 먹지 않았더니 증상이 심해져 잠들기 전에만 들리던 환청이 일상생활에서도 들리기 시작했고, 증상으로 잠을 자지 못할 때는 병원을 자주 찾았습니다. 이후 약을 먹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게 되었고, 조금씩 제 증상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취업 욕구가 강해지던 2012년 어느날, 담당 주치의 교수님과 상담을 하던 중 보건소 내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취업과 관련하여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다는 것에 놀라 곧바로 찾아갔습니다. 센터를 이용하기 위해 회원으로 등록하면서 정확한 제 진단명을 알게 되었고, 어머니의 걱정과는 달리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그간 저의 증상들이 강박증이라고 하기에는 증상이 달라 혼란스러웠기에 오히려 마음이 편했고, 제 증상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가고 싶었습니다.
이후 주간재활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병과 증상 등 약물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였고, 센터 내 여러 활동을 통해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자 기분이나 증상관리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무기력했던 제 일상이 점차 안정적으로 바뀌어가자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겨 증상으로 포기했던 대학교도 열심히 다닌 끝에 졸업했습니다.
졸업 이후, 각종 자격증을 준비하던 중 센터에서 친해진 형을 통해 창원직업능력개발센터를 알게 되었고, 가기 위해 알아보던 중 큰 벽을 마주했습니다. 등록된 장애인이어야만 입소가 가능했고, 장애등록을 하기 위해서는 부모님을 설득해야만 했습니다.
특히 아버지께서는 “네가 의지가 없어서 못 하는 거지. 그까짓 병 떨쳐낼 수 있다.”라고 생각하셨기에 반대가 극심했습니다. 오랜 시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한 끝에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었고, 무사히 장애인 등록을 마친 뒤 창원직업능력개발센터에서 IT·정보기술을 배우며 각종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하면서 이력서를 낼때마다 초조하고 떨어지면 좌절했지만, 무너질때마다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끝내 이런 저의 노력을 알아봐주셨는지 감사하게도 행정복지센터 내 ‘행정도우미’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드디어 나에게도 일할 수 있는 일터가 생기고, 취업자조모임을 나갈 수 있게 되어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별탈없이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마음에 걱정이 컸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함께 근무하시는 직원분들께서 잘 챙겨주시고, 여러 방면으로 많이 도와주신 덕분에 잘 해낼 수 있었습니다. 실제 근무를 하면서 고민이 생길때마다 센터 사례 담당자 선생님과 전화상담을 했고, 연차 쓰는 날에는 센터에 방문하여 상담하면서 사소한 일상까지 공유했습니다. 그저 나의 이야기를 진실되게 들어주고, 반응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힘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도움과 응원을 받으며 4년을 일하고, 2년을 쉬었습니다. 일을 그만둔 후 초반에는 규칙적인 생활을 잘 유지했지만, 기간이 길어질수록 다시 무기력해지고, 규칙적인 생활이 흐려지자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센터에 더 자주 방문했고, 취업 관련하여 좋은 기회가 있을까 알아보던 중 동료지원가를 모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료지원가란 정신질환을 앓고있는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공통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정신장애인에게 회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상호간에 지지를 제공하는 활동입니다. 활동의 취지가 좋았고, 공감 잘하는 동료지원가가 되고 싶어 지원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적절히 반응해주는 것. 이미 제가 받아본 힐링이었기에 저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현재 양성교육을 거쳐 동료지원가가 되었고, 경상남도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에 채용되어 경상남도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와 창원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경상남도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는 간호학과 실습생 대상으로 당사자 역량강화 교육과 자조모임 진행, 심심극단 공연 연습을 하고 있고, 창원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는 주간재활프로그램 보조와 동료상담, 한컷그림 제작 등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한날은 사례관리자 선생님과 함께 가정방문을 갔는데, 정신장애인 가족분들이 궁금하신 점들을 사례관리자 선생님이 아닌 제게 다 물어보시니깐 기분이 묘하기도 하고, 제가 다른 당사자 및 가족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면서 앞으로 더 열심히 활동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아직 회복의 과정을 걷고 있지만, 동료지원가로서 다른 동료분들께 도움을 드리며 함께 회복의 여정을 달리고 싶고, 지금까지 증상관리를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많은 선생님, 친구, 동료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