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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도민의 정신건강을 위해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가 나아갈 방향

아직도 기억나는 전공의 1년차 때 첫 케이스 컨퍼런스 때의 환자가 있다. 환청과 혼잣말이 두드러졌던 젊은 남성 조현병 환자였다. 당시 환자가 왜 병이 생길 수밖에 없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과 참 많은 면담을 하였었다. 하지만 면담을 하면 할수록 21세기에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렇게 힘들게 살아왔을까 싶은 놀라움과 안타까움이 더해졌었다. 그들은 하나하나 모두 사연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 참 힘들게 살아왔구나 하고 그들의 고통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열심히 치료를 한 덕분인지 환자는 많이 호전되었으며 다 같이 기쁜 마음으로 퇴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튼 그러한 기억을 가지고 있던 환자가 1년이 조금 더 지나서 다시 응급실로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간 환자는 거주지 문제로 타 지역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으나 여러 문제가 겹쳐 약 복용을 제대로 하지 않고 상담도 하지 않고 지냈었다고 한다. 입원 시에는 환자에게 그리고 가족에게 상담과 교육을 하면서 장기적인 치료 목표에 대해서 참 많이 상의하였었다. 그런데 퇴원 이후로는 아무도 돌봐주지 않고 챙기지도 않았으며 그럭저럭 잘 지내는 환자를 보고는 가족들도 ‘굳이 더 치료를 받아야 할까?’ 하고 마음이 느슨해졌었던 것 같다.
또 다른 사례는 모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자문의 역할을 할 때다. 그때 만난 수많은 안타까운 사례들 중 하나는 발병 이후로 수차례 입·퇴원을 반복하던 조울병 환자였다. 그럭저럭 기능 수준을 유지하는 분이었고 가족들도 어느 정도 경제적 수준이 되는 분들이었기에 환자는 방치되지 않고 집에서 꾸준히 잘 관리가 되어 언뜻 보면 말끔하고 건장해 보이는 삼십 대 중반의 남성이었다. 하지만 의례 그렇듯이 뚜렷한 직장이 없었으며 단기간의 아르바이트를 하다 말다를 반복하였고 하루 종일 집에서 컴퓨터만 하며 사회활동 없는 시간을 보냈다. 매일 같이 인생이 힘들고 재미가 없다며 곧 자살하면 어떡하나 란 걱정이 드는 시간을 보내다가도 또 언제는 갑자기 엄청난 계획이 생겼다며 신이 나서 며칠을 잠을 자지 않고 들떠서 어디가서 사고를 치지 않나 걱정이 되지 않는 환자였다. 의사에 대한 불신이 심해서 집에서 잔소리를 하니 치료를 받긴 하지만 닥터쇼핑도 반복하였고 본인이 먹는 약도 그때마다 달라지는 분이었다. 누군가 십수 년 이상 환자의 주치의로 있으면서 환자의 전체 질병 경과를 살피고 잘 관리해주면 좋으련만 지역사회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사례담당자 입장에서는 치료를 직접 할 수도 없고 병원을 관리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환자가 가끔 상담을 하고 싶다며 찾아오면 그때, 그때 열심히 환자에게 교육과 상담을 하는 역할만 반복하고 있었다. 이런 풍경은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낯선 풍경이 아니다. 과거 많은 연구에서 우리나라 정신건강서비스 전달체계의 주된 문제점 중 하나라 각 기관의 파편화를 들곤 한다. 정신의료기관이나 정신건강복지센터 그리고 정신재활시설, 정신요양시설 등 각 기관은 각자의 원칙과 프로토콜대로 기관을 운영하고 환자를 관리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각 기관에서 최선을 다해 환자를 관리하더라도 이러한 관리가 연속성이 없이 툭툭 끊기게 되는 것이다. 제도의 미비로 인하여 이러한 서비스 전달에 있어서 아무런 의무도, 인센티브도 없기 때문에 환자는 서비스를 받기 위해 서류를 또 준비해야 하고 여러 차례 자신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또, 가끔 응급입원을 위하여 경찰 또는 119가 개입하여 응급정신재활 서비스를 받으려고 하더라도 각 기관 사이의 정보교류가 원천적으로 막혀 있어 원활한 서비스 제공이 여전히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니 환자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들은 각 기관이나 개인의 선의와 희생에 의하여 법질서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진행이 되고 있다.
얼핏 국가에서 서비스 모형을 개발하여 전국에 보급을 하면 쉽게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볼 수 있다. 하지만 정신건강서비스 전달체계의 연속성을 강화하기 위해 하나의 모형을 제시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정신건강복지사업이 각 지자체로 이양되었으며 또 각 지역마다 보유하고 있는 정신건강복지 인프라의 유형과 규모가 상당히 다르기에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에 대한 해답 찾기는 각 지자체별로 다를 수밖에 없다.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비스 제공 주체들이 지역의 특성에 따라 지역에서 활용 가능한 자원에 따라 연계모형을 구축하고 이를 위한 역량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은 결국 역학조사에 있다고 본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정신건강과 관련한 많은 통계들이 중앙에서 수년에 한 번씩 실시하는 역학조사에 기대고 있으며 각 지역은 이를 기반으로 하여 어림짐작하여 지역의 수요를 예측하곤 한다. 이는 큰 결함 없는 사업수행이라는 측면에서 무난한 방법이겠지만 각 지역의 수요를 효율적으로 대처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이를 위해서는 광역정신건강센터가 역할에 걸맞는 연구조사 정책개발 등의 역할에 좀 더 매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역사회 내에서 인적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서로 간에 아쉬운 부분을 서로 매워줄 수 있는 협력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서비스의 연속성을 강화할 수 있는 주요한 생존전략이 될 것이다. 만일 현재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에 주어져있는 수많은 사업들에서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고 광역에 걸맞지 않은 직접서비스들을 과감히 지역사회로 이양하고 긴 호흡을 가지고 진행해야 하는 연구, 정책, 인력양성사업에 에너지를 집중한다면 한 단계 더 나은 서비스를 환자들에게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태 영 센터장
  • 現 경상남도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4대 센터장 역임
  • 現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서울대학교병원 인간행동의학연구소 선임연구원
  •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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