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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봄

현을 조율하는 조현병 당사자

당사자가 말하는 ‘정신장애’ 이야기

‘정신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 차별, 배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당당한 ‘조현병 당사자로서 모든 사회적 약자가 부당함과 억압당하지 않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꾸준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번호 사람을 봄에서는 “조현병”이라는 악기를 연주하고 계신 이관형님을 만나보았다.

* ‘조현’은 현악기의 줄을 고른다는 뜻. 뇌 신경계 혹은 마음의 조율이 제대로 되지 않아 뇌기능에 문제가 생기지만 치료를 통해 신경계와 마음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음

  •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20년 가까이 조현병이라는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이관형입니다. 현재 기자, 작가, 강사, 대표, 대학원생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저의 대표적인 정체성은 ‘당사자 활동가’라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조현병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제가 하고 있는 모든 활동의 핵심에는 ‘당사자’라는 정체성이 있고 당사자로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 Q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을 하고 계신 이유와 이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A “사람은 세 등급으로 나뉘는데 1등급은 비장애인, 2등급은 신체장애인, 3등급은 정신장애인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정신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받는 시선과 대우에 대해 풍자한 말이지요. 그만큼 정신장애인은 사회로부터 차별받고 소외되기 쉽습니다. 심지어 혐오와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그중 가장 소외된 정신장애 당사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신장애인이 앞으로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세상의 약자와 소외된 자들의 친구이자 옹호자였던 예수님을 본받으면서 당사자 활동을 하겠다.”는 마음이 원동력이라 생각합니다.
  • Q 조현병 당사자로서 누군가의 앞에 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나요?
    나의 조현병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저는 본래 내성적이고 남들 앞에 서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심했습니다. 그러나 대학생활 중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통해 바뀌게 된 것 같아요. 첫 번째는 기독교 동아리에서 매주 돌아가며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전까지는 제 인생이 제일 힘들고 괴로웠다고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어요. 그때 깨달았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삶은 힘든 것이라는 걸.
    두 번째는 스피치 발표수업이었는데, 그때도 자신이 없어 고개를 푹 숙이고 소개를 했어요. 동아리에서 표현했던 경험이 있어서였는지 앞을 보지는 못해도 제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었죠. 이야기가 끝나고 나니 모든 사람이 저를 향해 뜨거운 박수와 호응을 보내줬습니다. 그때부터 자신감을 얻었고, 책과 강연을 통해 저의 아픔과 상처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Q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사람들이 왜? 정신장애에 대해 편견을 가지는 것 같나요?
    또, 이러한 편견이 ‘사실’이 아닌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정신장애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정신장애인을 만나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을 겁니다. 미디어에서는 소수의 조현병 범죄자를 통해 조현병을 잠재적인 범죄를 일으킬 수 있는 존재로 그려놨습니다.
    그러나 조현병의 유병률은 1%로 우리나라 인구 중 조현병 추정인구는 50만명에 이릅니다. 실제로 흔한 병이지요. 그들 모두가 잠재적 범죄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마치 ‘혈액형 A형인 사람이 범죄를 일으킬 수 있다’,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잠재적인 범죄자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나 정신장애인에게만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하는 존재’라고 이야기합니다. 오히려 이러한 생각이 정신질환에 대한 치료를 거부하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가 됩니다. 적절히 치료를 받아서 빨리 회복될 수 있어도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치료를 막아 만성화를 시킵니다.
    정신장애인은 그저 보통의 시민이자 국민이고 우리의 가족이자, 친구, 이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길 원하는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 Q 선생님의 저서 “바울의 가시”에서 “조현병 환자가 아닌 “조현병을 가진 사람으로 불러주세요” 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A
    ‘조현병 환자’라고 하면 그 사람의 인생과 성품, 성격 및 특징까지를 ‘조현병’에 묶어서 표현하는 뉘앙스를 풍깁니다. 반면에 ‘조현병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면 그 사람이 가진 여러 특징 중 하나가 조현병인거죠. 조현병이라는 질환을 가졌다는 것보다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존재’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치료도 물론 중요한 부분이지만 정신질환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비록 조현병을 갖고 있으나 이로 인해 방해받거나 낙담하지 않고 내 삶을 어떻게 행복하고 가치 있게 살아가는가에 인생의 초점을 둘 수 있습니다.
  • Q 우리 사회에서 당사자가 겪는 어려움과 고통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있습니다만 그중 하나만 말하자면 직업과 비전에 대한 꿈입니다. 당사자 활동을 하다 보니 제 주변에도 당사자들이 여럿 있어요. 그중에는 대기업 직원도 있고, 미국 아이비리그 유학생, 프로 축구선수, 서울대 심리학과 전공자, 공무원, 심지어 의대생도 있었죠. 당사자로서는 두 갈래의 길을 마주하게 됩니다.
    첫 번째 길은 모두에게 병을 숨긴 채 걸어가고 있던 진로와 직장을 유지하는 방법이에요. 두 번째 길은 병을 공개하고, 장애인 등록을 하여 복지카드를 받아 정신장애인 일자리를 제공받는 것입니다.

    전자를 택한 자는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병을 숨기고 버텨야 합니다. 정신장애와 관련된 어떤 도움과 배려도 받을 수 없고 버텨야 합니다. 후자를 선택한 당사자는 자신의 능력, 전공과는 관련 없는 단순 노동이나 시급이 적은 일자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두 갈래 길에서 병을 밝히고 자신의 전공을 살려 일하는 당사자는 거의 없습니다. 저도 오래 꿈꿨던 언론사 기자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퇴근 후 병원 갈 시간조차 없어서 결국 회사를 나왔습니다. 지금의 저는 1인 출판사를 차려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작가와 기자 일을 하고 있지만, 저 같은 사례가 얼마나 많겠어요. 대다수 당사자들은 병을 숨기거나 전공과 무관한 직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외에도 당사자가 겪는 어려움과 고통은 굉장히 많습니다. 연애와 결혼, 사회적 시선과 편견으로부터 오는 자기 낙인과 자존감 하락, 가족 내에서의 소외감 등 이 자리에서 다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있습니다.
  • Q “사회가 더 따뜻하고 아름답게 변화하길 기대한다”는 말씀을 듣고, 우리 사회가 앞으로 더 당사자와 함께 어울려지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많은 활동과 노력에 대한 변화를 경험하신 적이 있나요?
    A 세상에 얼굴을 알리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100여 차례 강의를 해왔습니다. 차별과 편견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묵묵히 활동을 이어나갔고, 제가 출연한 유튜브 영상에 적힌 응원과 격려의 댓글을 보며 보람과 희망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최근 조현병 환자에 의한 폭행사건 기사를 접했고, 그 기사 댓글을 읽으면서 제 노력과 활동이 헛되었구나 싶었습니다. 수많은 활동에도 사건 하나가 터지면 다시 저만치 인식이 후퇴하니 활동을 접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무의미함을 느꼈지만 다시 마음을 잡았습니다. 제가 세상을 바꾸고 사회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생각을 버리기로요. 사실 혐오와 차별은 어느 시대에서나 있었고, 절망적이고 악한 사회 속에서도 누구나 당당히 목소리를 내왔어요.
    그 당시 그들의 외침과 목소리가 거대한 사회 안에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느꼈을텐데 신기하게도 사회는 선한 방향으로 변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선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역사 흐름에 동참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 Q “정신장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지 않은 사회이기에 당사자로서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라 생각합니다.
    조현병 악기를 연주하고 계신 당사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과 사회구성원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먼저 당사자에게, 인생의 깊이와 아름다움은 학력이나 경력, 재산, 외모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때로는 아파서 쓰러지고, 실패해서 좌절도 할 수 있지만, 그 후에 다시 일어서고 나아가는 게 인생을 풍성하게 만든다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여러분이 가진 조현병이라는 악기를 통해 더 깊고 아름다운 소리로 사람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우리 사회 여러분들에게는 당사자들도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여러분들처럼 당사자들도 훌륭한 악기를 갖고 있죠. 사회가 관심을 가진다면 당사자들의 헝클어진 줄을 조율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악기의 줄이 틀렸다고 해서 배제하고 차별하기보다,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해요. 한 악기도 빠짐없이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모여서 합주를 해나갈 때, 사회는 아름다운 하모니를 연주할 수 있습니다.
  • 인권은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어요. 여성과 흑인들의 권리도 남성과 백인들이 대신 도와준 것이 아닙니다. 여성과 흑인 당사자가 스스로 나서서 쟁취한 것이죠. 언론이나 전문가, 의료계의 도움으로 인식을 개선하는 건 한계가 있어요. 결국 당사자가 나서야 합니다. 하지만 인식과 편견이 워낙 좋지 않다 보니, 나서는 게 쉽지 않아요. 우리 사회가 이러한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호응해주고, 힘을 합쳐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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